화투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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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의 기원과 숨겨진 이야기

기원, 수투, 화투

우리가 흔히 즐기는 화투(花鬪), 과연 어디에서 유래했을까요? 많은 사람이 화투를 일본에서 유래한 놀이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 기원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화투는 일본의 ‘하나후다(花札)’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그 하나후다 또한 유럽과 동아시아의 다양한 카드 놀이 문화와 얽혀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화투의 기원을 따라가 보며, 그 흥미로운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겠습니다.


1. 화투의 기원은 일본의 하나후다?

일본의 근대화된 하나후다

화투는 일본의 ‘하나후다(花札)’와 거의 동일한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후다는 일본에서 16세기경부터 존재했으며, 일본 특유의 화조풍월(花鳥風月) 문화를 반영하여 제작되었습니다. 12개월을 상징하는 48장의 카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월에 해당하는 꽃과 동물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화투도 이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의문이 생깁니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하나후다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요?


2. 하나후다의 유럽 기원설

16세기 중반, 포르투갈 상선이 일본에 표류하면서 유럽의 카드 놀이 문화가 일본에 전파되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즐겨하던 카드 놀이인 ‘카르타(Carta)’가 일본에 들어오면서 변형된 것이 바로 하나후다라는 주장입니다. 일본은 카드 놀이를 자체적으로 개량하여 일본화된 카드 게임을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일본 전통 문화를 반영한 하나후다가 탄생했습니다.

하나후다가 유럽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 중 하나는 19세기 일본에서 제작된 ‘총리대신(이토 히로부미)의 카르타’입니다. 이 카르타에는 일본 전통 시인 ‘와카(和歌)’가 삽입된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유럽 카드 놀이와 일본 전통 놀이가 결합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의 카드 놀이가 동아시아에 전해지기 전에, 이미 동아시아에도 유사한 카드 놀이 문화가 존재했습니다. 즉, 하나후다는 단순히 유럽의 카드를 일본화한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전통 놀이와 결합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동아시아 전통 카드 놀이 – 마조(馬弔)와 골패(骨牌)

유럽에서 전래된 카드 놀이와 일본의 전통 놀이가 결합되기 전, 동아시아에는 이미 다양한 카드 놀이가 존재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중국의 마조(馬弔)와 골패(骨牌)’입니다.

  • 마조(馬弔): 약 B.C. 2000년경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카드 놀이입니다. 중국 황제의 후궁들이 놀이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 있으며, 궁중 놀이에서 점차 민간으로 퍼졌습니다.
  • 골패(骨牌): 오늘날의 마작과 비슷한 형태의 카드 놀이입니다. 별자리 배열을 본떠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송나라 시기부터 널리 유행했습니다.

이러한 카드 놀이가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고, 일본에서 유럽의 카드 놀이와 융합되면서 하나후다가 만들어졌다는 가설이 유력합니다. 즉, 하나후다는 유럽에서 기원 된 것이 아니라 동양의 카드 놀이 문화와 유럽 카드가 결합된 결과물인 셈입니다.

4. 조선의 수투(數鬪) – 화투의 숨겨진 뿌리

화투의 기원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조선 시대의 ‘수투(數鬪)’입니다. 수투는 조선 후기부터 유행한 카드 놀이로, 현재의 화투와는 형태가 다르지만 그 기원적 요소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 수투는 80장의 패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람(人), 물고기(魚), 새(鳥) 등의 문양과 숫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 수투의 디자인은 일본의 하나후다와 유사한 부분이 많으며, 이는 일본이 조선의 수투를 참고하여 하나후다를 개량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 서양 연구자들 중 일부는 조선의 수투가 유럽의 카드 놀이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즉, 조선의 수투가 일본으로 전파되었고, 일본에서 유럽의 카르타와 결합하여 하나후다가 만들어졌으며, 다시 조선으로 들어와 현재의 화투가 탄생했다는 흐름이 가능해집니다.

5. 화투, 단순한 일본의 모방이 아닌 한국적 변형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화투는 일본의 하나후다에서 유래한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적 요소가 추가되며 독자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 한국 화투의 디자인에는 조선 후기 민화적 요소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 한국식 화투 놀이 방식(섯다, 고스톱 등)은 일본의 하나후다 게임과는 전혀 다른 한국적 변형을 거쳤습니다.
  • 한국에서는 단순한 놀이를 넘어서, 영화 타짜와 같은 문화적 콘텐츠로까지 발전하며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즉, 화투는 단순히 일본에서 전래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흐름이 얽혀 변화한 결과물입니다. 원조를 따지는 것보다는 문화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마무리하며

화투는 단순한 카드 놀이가 아니라, 동아시아와 유럽의 카드 문화가 융합된 산물입니다. 일본의 하나후다가 유럽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 이전에 동아시아에도 유사한 카드 놀이 문화가 존재했음을 고려해야 합니다. 또한, 조선의 수투가 일본의 카드 놀이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화투의 역사는 단순한 일본 기원설로 설명될 수 없는 복잡한 문화적 교류의 결과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즐기는 화투는 일본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우리만의 방식으로 변형되고 발전해 왔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집니다.

화투를 칠 때, 그 안에 담긴 복잡한 역사와 문화를 한 번쯤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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